붕어빵은 착한가? 유아인은 나쁜가? (나 혼자 산다 유아인의 애호박 게이트)
<나 혼자 산다> 유아인 편을 봤다 그가 방송에 출연한 뒤 애호박 게이트라는 게 열린 것 같다. 그리고 방송 모습으로 보아 그동안 대중과 뭔가 논쟁이 있어 보였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대한민국의 비교적 젊은 남자 배우라는 점, 가끔 보는 프로그램에 최근 등장했다는 점이다.
유아인 씨 죄인?Nina Simone 니나 시몬의 'Sinnerman'은 그를 위한 곡인가? 도망쳐서 하느님께 간청해야 하나. 그간의 고해는 충분한 것 같지만.그에게 오히려 다른 노래를 쥐어주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 미소 짓는 것을 잊지 마라
이에 대해 검색하던 중 몇몇 트위터 글을 읽었고 유아인 씨의 글을 이해할 수 없어 직접 고쳐 봤다는 글도 발견했다.
빨간 펜 선생님은 구문 학습지에 실린 것도 아니고 목줄이 뒤집히는데.
어렵다고 해서 프레임을 바꾸면 되는 건가.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이 눈에 띄었다. 결과적으로 유아인의 의도가 변질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단순한 분위기 차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논점이 바뀌어 있었다.
W빵집 77번 슈크림 빵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아무거나 다 좋은 슈크림 빵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아니지 않아? W빵집에 간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대안을 알려주는 거고, 분점 W빵집 등 번 슈크림 빵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엄연히 다르지 않을까? W빵집으로 가는 골목 W아이스크림 가게 보고 거기가 거기야라고 하면 어떨까.
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부러웠다. 자기주도형 학습을 한다는 점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짓밟는 데 쓰이는 에너지라 해도 들이는 시간과 집요함, 끈기가 대단했다. 악에의 헌신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마치 김첨지의 사랑처럼도 보였다.'운수 좋은 날 김첨지가 왜 못 먹어' 츤데레의 진리
물론 본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언어였을 수도 있다. 다른 문장에서도 말했지만 한자어라든지 배경 지식이라든지 어휘, 표현이라든지 문장의 길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나에게 맞는 언어가 있다. 대화란 결국 자신에게 친밀한 단어를 골라 듣고 상호 교환율이 높은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행위라는 생각이다.
그는 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대화, 언어 게임
Ittjistj Infj들이 말하는 그 진실이라는 게 대체 뭘까?어째서 잇티제는 자신을 임프제... m.blog.naver.com
청자를 고려해야 하는 것도 타당한 말이지만 목적에 맞게 말해 달라고 비난하는 것은 불평에 가깝고 주시하면서 원하는 것을 내놓으라는 것은 깨끗한 사랑의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붕어빵은 나쁜가?
Q는 붕어빵을 싫어한다. 맛을 싫어할 뿐 아니라 먹으면 배탈이 나 감정적으로도 불쾌해지는 데다 붕어빵 상인들이 한 곳에 정착해 판매하지 않아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태다. 결정적으로 Q가 붕세권 거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원할 때 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으로 대리 만족해야 한다. 이때 붕어빵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 있나?양보해서 '적어도 Q에게는 나쁜 것'이라고 해보자. 이렇게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붕어빵이 그 자체로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도 붕어빵의 나쁨에 대해 정확히 같은 지점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단 말인가.대부분 호오의 영역이다. 취향의 문제다 개인의 기호가 반영되는 것이다어떤 대상이 교묘하게 뒤섞인 사건과 개인의 인식 속에서 악이라면 그 대상은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선이 될 수 있다.
나를 불편하게 한다고 붕어빵이 "악"이 되는건가? 정당하게 돈을 주고 구입했는데도 입맛에 만족하지 못해 모욕감을 준다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그에 동의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고마운 일로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이때라고 해서 내 말이 맞지 않느냐고 말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때로는 다수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타인, 환경, 시대, 문화권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리트윗 수라도 좋아요. 물이 뭐냐고 반문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정당하게 하기 위해 남을 방패막이로 삼지 않아도 된다. 숫자는 사실이지만 진실과 직결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때로 무언가를 너무 좋아해서 보지만 신기할 때 시선을 고정시킨다. 집단의 여론 자체가 거대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으면서까지 유도하지 않았는가. 이미 뼈아픈 기억이니 그 경험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붕어빵 자체는 악마가 아니다.진짜네 붕어빵 나쁜 거 아니야아래 첨부된 문장에서 발췌 <발췌된 문장 전문보기>
옛 시절이 그립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근데 '그때가 지금보다 더 좋았어'라는 말에는 아예... m.blog.naver.com
대부분 자신의 취향을 대상 자체의 조각으로 착각한다. 본인에게 폐를 끼쳤다고 해서 그것이 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말그대로불편할뿐이지,주관적인영역이지그관점을다른사람에게적용해서어떤생각이옳다,이런생각이정답이라고할수없다. 강요를 가르치면 안 되는 폭력이다자유와 존중해 달라면서 그토록 개별성을 획득하려 하면서 왜 집단화를 하려는지, 동일해지려 하는지, 결속을 꾀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것을, 누군가를 지적할 때 그 순간은 그렇다, 그렇다. 당신의 원래의 방식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발언들은 당신에게 있어서 해야 할 말이다. 사실 발언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더라도 여러 상황에 따라 당연히 대답해야 할 말이 있다. 어떤 때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장소에서, 어떤 누군가에게. 당사자에게는 틀리지만 상대방에게는 맞는 말을.
이해가 아니라 분리다. 이해라는 말도 동일화 작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차이를 차이로 보지 않고 동일성 내의 차이로 보기 때문에 갈등이 필연적이다. 처음부터 우리는 같은 인간이 아닌데 자꾸 같은 인간이고 동등한 인간이라는 예쁘고 쓸데없는 말이다. 타자를 타자로 생각하지 않으니 이해하고 규정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타자는 오직 또 다른 나, 그러니까 스스로 만들어야 할 무언가가 된다.인간의 분수와 오만함에서 발췌된 문장 넘치는 다양성과 모든 것이 가치 있게 됐다. 이 글의 요지는 인간 중심, 인간 우월주의 신화 분 m.blog.naver.com.
(사진 번역: 너는 이미 내가 악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유아인 엄홍식이라는 사람은 수없이 놀림을 받았다.그를 안됐다고 하면서도 끝내는 한결같이 그렇게 글씨 쓰지 말라고 했다. "모두들 너무해"라고 서두에서 말했지만, "너무 어린아이가 나를 가로막고 있다.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이 자기 성질을 버리고 둥글게 되고 예뻐지도록 해야 한다"고 끝을 맺는 글도 있었다.
엄홍식 씨는 귀여움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귀여워해주고,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고, 예쁘게 해주기 위한 출생인가? 원치 않는 예쁨을 받기 위해 마리오넷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럴듯한 소리를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는 생각이다. 그런 사고야말로 세뇌에 가깝다. 깨끗하게 사랑받는 것이 무조건 옳아야 한다는 말투가 대상이 된다. 사람을 한정시키다
안타까워지면 그에 대한 조롱을 말리는 데 한몫 했을까. 결국 미운 시누이였다. 5252 모두 조준 대상이 틀렸다 ㅠㅠ 노리는 대상은 유아인과 유아인의 글이 아니지 않을까.엄홍식이라는 인간의 인격과 사고방식에 총구를 들이댄다. 아니면 반대로 유아인, 혹은 엄홍식을 테러범으로 인식하는 것일까. 꾸짖어야 할 대상은 유아인씨가 아니라 타자를 압박하는 사람들이다.
글을 쓰는 게 왜 문제인가. 국가가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고 민주주의는 1원 규칙이지만 개인을 매장시키려고 모두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 정말 무서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야! 하지만 그게 타인을 침해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유아인 씨는 아마 뭔가 해명해야 한다고 여러분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자기 과시적, 성민 의식이 아니라 표현을 인용하면 너그럽게 봐 달라는 측은함이다. 더 이상 이해를 바라지 않으니 곡해는 그만해 달라는 절실함이다.글을 쓰는 그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그를 말릴 것이 아니라 그에게 무차별적 공격을 가하는 자에게 잘못됐다고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다들 미쳤어요 휴먼? 미쳤어요?바람개비처럼?
아니라고, 자신의 의도를 와전시키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그 절박함이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나빠 보이는지, 모두의 눈에 어떤 색색의 셀로판지를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무래도 유아인 씨는 미운 털이 듬성듬성 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악이 아니라 중세시대가 아니다. 유아인은 마녀가 아니며 대한민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 인민재판에 대한 강박을 멈춰도 좋다. 어쩌다 홍위병이 되신다면 제2차 세계대전도 끝나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
유아인 VS 엄홍식
엄홍식이라는 사람은 배우 유아인, 스크린에서 다른 인물의 삶을 연기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지, 유명해지고 싶어 인기 있고 재능이 없고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배우로 살아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다.간단히 말해 배우 유아인은 대중의 관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예쁘게 사랑받기 위해 연예인이 된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인간 엄홍식은 자신을 표현해 주는 도구로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뿐, 예쁘게 사랑받는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직업 특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없어 보인다. 이 인간이 보고 있는 것은 대중보다는 자기의 이상과 삶을 살고 자아를 실현시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배우 유아인이라는 페르소나보다 봉캠 홍식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비중이 큰 것 같다. 본인의 판단 아래 메인 캐릭터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투자하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만약 그가 대중을 염두에 둔다면 연예나 시트콤에서 한 명씩 등장하는 친화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아이돌들의 팬서비스 같은 소통이 아니라 자기 삶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뭔가를 얻어 변하고 싶어 하는 데 가까울지도 모른다. 어설픈 친밀함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삶으로부터 완전히 다져나가면서 어떤 방향으로든 사회에 공헌하는 모습을 통해 대중이 깨닫는 바가 있듯이, 그리고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일 것이다.그래서 이 인간은 유이가 아니라 엄홍식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며, 자신의 미남이 아니라 공동의 가치를 탐색하자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 태도가 교조적이거나 중2병, 허세, 자기과시적 예술병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사회운동가 또는 개혁가의 측면으로도 볼 수 있다. 적어도 이 인간은 진심이라고 생각해.
유아인의 SNS에 '엄홍식의 태도'
서툴러 보여도 언제고 최선이 아닐 때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얘기를 할 때는 본심을 매도당한 것으로 오해를 풀고 싶은 하소연에 가까웠다. 그의 글이 부담스럽다거나 감정에 치우쳐 읽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직업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발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격앙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불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불필요한 인신공격을 하지 않고 글을 쓰는 동안 감정을 조절하려는 듯했다.
비록 그가 잘하거나 강연을 하는 등 열정적이지는 않았지만, <해리포터> 하마 왓슨 역으로 유명한 배우 엠마 왓슨이 자신의 영향력을 고려해 활용하듯이, 자신이 말함으로써 어떤 효과, 사회에 긍정적인 바람을 불어넣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그의 글은 종종 절대 다수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 사회의 부당함과 거대담론을 끌어들이면서 하자, 해야 한다는 식으로 끝맺는 경우를 보았다. 엄홍식이 공격하려는 대상이 있었다면 위와 같이 특정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 비록 자신을 저격한다 하더라도 그가 속한 거대한 시스템에 화살을 맞추려 하기에 적합한 것 같다.
다만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 해야 할 말과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해명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 망설이는 점이 있어 보였다. 포지션에서 모호함을 느꼈다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난잡함이나 글의 논점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느낌에 대해서는 엄홍식 개인이 겪는 감정과 대중 앞에 선 사람의 행동을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말을잘하거나글을잘쓰거나쉽게설명하는것은재능이라고할수있다. 별말을 하지 않아도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은 능력의 범주다. 아이들의 화술 능력을 키우려고 하고 있고 어른들을 대상으로 화술 학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재능이란다. 그런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하지 않으면 그들과 비교하거나, 상대방이 자기가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고 해서 시비를 걸지 않아도 된다. 콩쥐팥쥐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아주 감명 깊었다고 해도 현실에서까지 동화를 대입하면 불행해진다.
유아인의 감수성, 엄홍식의 감수성
유아인이라는 캐릭터가 매우 민감하고 감수성이 지나치다고 자의식 과잉을 비친다는 점에 대해서는 용어를 좀 바꿔보기로 한다. 민감성보다는 민감도라는 말은 어떨까.생명체 안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은 인간의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다. '동물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민감함도, 민감함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둔감한 수준인데, 그래도 인간은 운 좋게 생태계 지배자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민감도가 높다는 것은 주위의 문제점과 불쾌감에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반응한다는 것으로 왜곡된다는 묘함.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모르는 경우가 더 불편한가, 아니면 위험신호를 느끼면서도 그 속에서 살아야 하고 위험하다고 할 때마다 꾸중 듣는 경우가 불편한가.
그의 예민함에는 도움이 안 되더라도 당신의 예민함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테니 거세해 달라 소음해 달라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그게 절대 다수의 행복 추구인가?
디퓨저 하나, 디저트 하나, 마그네슘 하나 신경 쓰지 않는데 민감성 운운하는 것은 상당한 자기애가 아닌가.이런 상황에선 '사람이 소중하다'는 말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귀하다 사람은 소중하다 이런 아름다운 말들이 각종 혐오와 범죄로 가득 차 있는 현재 사회를 위로할 수 있다.. m.blog.naver.com
원래 타고난 것을, 타고난 것을 부당하다고 해야 할까. 그 존재는 부정되어 마땅하거나 잘못된 인간이며, 그래서 돌연변이이며, 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절대 다수의 행복 추구가 반드시 정의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것이 상생이고 윤리적인 것인지, 선택적인 잣대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배우 유아인, 엄홍식도 휴먼이야휴먼나혼자사는 유아 가보차 부침개유아인 애호박 게이트 재점 불
어떤 직업을 가졌든, 어떤 글을 쓰든 그의 선택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부당하다. 하물며 그가 어떤 요리를 하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를 이전의 행동과 연결시키는 것은 과잉 해석이다. 그렇다고 자유의지를 가진 상대가 복종할 리도 없고, 심판을 하려 해도 실제 법종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형벌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자판을 통해 분노를 터뜨린다. 분명히 순종을 강요하면서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이해가 안 가서 좋은 게 좋은 거구나 하는 심정으로 상대방을 위해 한두 마디 조언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뭐랄까 가해자의 흔한 변명이라고 느끼면 무리일까? 잘 말해봐야 고개를 끄덕이고 답을 정해 놓은 상태에서 자신을 설득해보라는 열강의 오만함인 것 같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면, 이 인간이 배우 유아인으로 살아가기에 적합한가, 배우는 대중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때에, 그 점에 대해서는 이 인간이 대중이 보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호에 쉽게 부합하는 연예인으로서의 모습과 관련된 시작은 낮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능력치 중 하나다. 엄홍식은 배우, 연기자, 스탯에 집중함으로써 누구보다 자신다운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다. 여기서 걱정하지 말라는 뜻은 은근히 나무라며 상대방의 실책을 기다리며 걱정이라고만 말하는 유형을 말한다.유아인 SNS 트위터 '내 신세' '당신의 신세' '뭐가 더 좋은가''나 혼자 산다' 유아용 컴퓨터 앞에 착석아인 형 형 친구 동생!
한번 비비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우리는 이미 너무도 반짝이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야 했다. 잘 기억하고 경험한 일이 아니었던가. 이러면 틀림이 없다. 습관으로 이기심이다 폭력을 삶의 태도로 결정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인생 전반에 걸쳐 촘촘히 깔려 있어 얼마나 타자를 짓밟고 무력하게 만들 것인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본인의 말이 옳아도, 주장이 옳아도 내 것이 소중한 만큼 남의 것도 그렇다는 점을 간과하지는 않을까. 어떤 발언이 잘못 보일지 몰라도 주장과 인간성은 별개다. 인격을 공격하는 것은 품위 있는 행동이란 말인가. 지성사회에서 그런 행위를 지지받기를 기대하는가. 끔찍하고 끔찍하다
유아인은 어느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이 무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바빠서 타인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사회에서 물러나 단지 그것에 반응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단련하는 것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수행과 명상만이 유일한 버팀목이고 바쁘게 움직이는 것만 믿었을지 모른다.유아인 애호박 트위터 애호박 사이트
오해받았던 기억이 쌓이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넘어 시간을 두고 들을 수 있을지 기대가 적어진다.따라서 대화를 나눌 때는 초조해지고 극도로 긴장하게 되며 횡설수설하게 된다. 외로운 사람들은 시간이 필요하고 이때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만 본인이 잘 정리해서 뭔가를 내놓기를 선호하게 될 확률이 높다. 자신의 주도 아래 예상할 수 있는 반응 범위와 트램펄린을 어느 정도 준비해 두는 것이다.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행위가 글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필요한 만큼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긴급한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도 있다. 게다가 글은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시간을 쪼개야 하고, 읽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만큼 휘발되거나 오해를 살 부분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보다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받아 들일 가능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뭔가 다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희망은 잠깐이고, 외롭고 서투른 인간의 시도는 또 한번 조롱받는다. 장문의 글들은 오히려 외면당하고 훑어본 것에 불과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싫다고 인식된 상대라면 그가 무엇을 하든 보고 싶지 않은 발악으로 치부될 수 있고, 각각의 인식이 있는 한 그것이 글이라고 해도 오해를 피할 수 없음을 간과하고 있다.이 경우에 잘못이 있다면 생물학적 사회적 나이와 상관없이 순수하고 타인에 대해 낙관적 태도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탓을 해야 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더 그럴듯하게 꾸밀 수 없었기 때문이며, 오직 진심만을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내용에 관한 한 특정적으로 유아인을 지칭하지는 않았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 자체를 계속 부인하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럴 리 없다고 우기는데 말이다. 나의 감정과 느낌마저 파삭파삭 흩어져 버리는데. 단어 하나하나가 파괴되고, 문장은 파헤쳐지고, 내용은 모두 훼손되고, 의도하지 않은 말이라는 의미가 다시 태어납니다. 듣고 싶어. 견딜 수 있을까, 당신은?
사람은 화를 내거나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성질이다.
민첩한 몇 사람이 소리를 낸다. 소수가 행동한다. 상대적으로 수가 열세여서 이상하다는 대접을 받는다. 그들 주변에 포진한 다수는 정당한 목소리와 움직임에 강한 적대를 보인다. 집단을 강화하는 것은 동일성이다. 안정감이다
이제 불안은 집단의 성격이 됐다. 10년 전에 비해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자살률이 증가해 전체적으로 지구는 우울하다. 이제 특정인만 특별히 불행한 것은 아니다. 도처에 신경과민이니 특별할 게 없다.
누구의 목소리를 제지하고 발언을 막는 행위가 고분고분해지는 것은 아니다. 입을 막으면 말을 잘 듣게 된다는 연결고리는 부자연스럽다. 억측이야 오만해 비약이다. 비합리적이다. 윤리적이지 못하다. 입을 막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더 그럴듯하다.
소수라고 해서 이해가 결여된 것은 아니다. 분노하는 순간이 온다. 동조하기 전에는 침묵하고 무기력해진다. 결국 무력감을 느낀다.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거나 설득해서 모든 것을 중단할 수도 있다. 굉장히 많은 것을. 동의할 수 없는 세계를 어떻게 긍정하나.아래 글에서 발췌 전문 링크 '지칸 메신저 신드롬 게임:사회 부적응자를 위한 찬가' 지칸 아세요?게임유튜버지컨이 메신저 신드롬에 대한 태도 메신저 신드롬은 모바일 게임이래... m.blog.naver.com
붕어빵은 착한가? 유아인이 안 좋나?
종교적 의미의 도덕과 윤리, 선과 악이라고 일컫는 것이야말로 판타지다. 영어에 갇혀 있는 타자를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것보다 자유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불쾌한 일을 참고 견디기 힘든 현실을 좀 더 견디기 위해 대상을 회피해야 한다. 맞선을 필사적으로 피해야 한다. 내 삶을 지탱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며, 그때 그것만이 유일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것을 부정하면서 개념을 확장시키려고 자유를 외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모순이 생긴다. 부정하면서 대상을 거부하는 동시에 대상을 파괴했다는 틀 안에 다시 갇히기 때문이다. 구속된 사람은 다름 아니라 그것을 주장하는 자일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자유를 외쳐야 한다는 강박, 못됐음을 확신하게 되는 오만, 분노를 위한 분노에 몰두함으로써 신경증을 낳는다.
뭔가를 지적하면서도 지적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소모적인 행위다. 자유를 외치면서도 자유를 외쳐야 한다는 틀 속으로 스스로 들어간 것이다. 본인이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볼 수 없어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것들은 우리 세계에서 잘 편집되고 잘못 사용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지만, 단지 그 시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시도할 때 따르는 섬세함이 이 지루한 갈등을 견디는 유일한 태도로서 귀중함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비난과 모독은 무책임하고 싸움만 더 연장시킬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발언권을 줌으로써 자신도 해방할 수 있다.내가 그들에게 부여하는 가치는 그들에게 발목을 잡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인한다. 그렇게 한동안 괴로워하며 도망치려 해도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줄곧 그것들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 난 정체를 몰라불고기 피자 불고기를 좋아하지 않아. 아주 어릴 때 지금까지... m.blog.naver.com
유아인의 예술병, 엄홍식의 중2병
예민함은 민감성이 높고 기민함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상술하고 있다. 중2병, 진검충 등의 말이 사회적 약자를 파생시킨다. 사람을 믿고, 사랑을 찾고, 불합리한 행위에 맞서면서 부당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왜 병이 되고, 그런 사람이 왜 병자가 되어야 하는가.진지해질 때 진지해지고 교묘한 코드를 지나치지 않는 민첩성이 언제부터 질타받았어야 했던가. 불편한 것을 웃고 지나가다가, 또 잘못이 아님을 사과하면 잘못이 아닌 것이 잘못이 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옳다고 믿어 타자를 굴복시킨다. 그에 맞서기 위해 그만큼 교육을 받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막상 다른 게 아니라 지적하면 네가 얼굴을 본 건 왜 그러냐며 예뻐지라며 동일성과 획일화를 강요한다. 이때 하는 행동의 가장 좋은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무엇을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고 싶지 않다고 해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본인을 중심으로 타인을, 동족을 벌레로 만드는 언행에 기약할 정도이다.
주위의 시선에 민감한 사람들이 서 있을 공간이 더 없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제발 뭘 더 해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가만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나친 관심은 서로를 해친다. 예민해 보여도 그저 지켜봐 달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일까.말처럼 불쾌감과 불쾌감만 줘도 벌레일 수 있다. 그러나 진상을 파악해 보면 해충이 아니라 익충일 수 있다. 착한 마음으로 이익을 퍼뜨리려 한다. 그렇게 벌레 벌레 대신 충성충을 쓰는, 인생을 진지하게 살면서 어제보다 조금 나은 자신을 원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에 대해 재고해 달라는 것이다.
그가 설전을 벌이는 태도는 흡사 예쁘지만 찰나의 팬과 스타 간의 소통이라기보다는 미운 정, 아름다운 정이 들어있어 엎치락뒤치락해도 결국 상대가 있어야 할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원하는 것에 가깝다고나 할까. 엄홍식이란 인간은 타자가 없으면 공허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대중과 그는 오랜 연인 같다. 오해라며 붙잡아도 보고 토라져서 얼굴도 보이지 않다가 며칠 뒤 다시 자니? "집 앞 놀이터야"라고 문자를 보내는 듯한 그들. 카카오톡으로 굳이 이메일 보내놨거나 우편함에 편지 넣어놨거나 기다릴게 있으면 나와. 안 나와도 되지만 기다릴 수는 있어라고 로맨틱한 건지, 심한 건지, 사람이 섞여들 만큼 정직한 면과 꾸미는 법을 몰라도 고집스럽고 솔직하게 사랑을 외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어느 쪽이든
그동안의 내용이 유아인을 편파적으로 변호했다고 생각한다면 형평성을 위해 반가운 뉴스를 준비했다. 자식도 홍식이도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여러분이 끌어내리려고 하지 않아도 완화된다. 그게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진다는 것이다. 삶의 방식은 본인이 결정할 일이고, 그것은 신념이라고도 한다. 어떤 어른이 되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지는 내 몫이다. 이것은 본인 이외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아시지 않을까. 어른이 되는 과정이 험난하지만 질타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한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 시간을 쏟기에는 인생이 아깝다. 불쌍해져. 여러분, 가치 있는 삶이야.
직업 특성상 사람들의 귀여움을 더 받으면 슬픔에 빠지기 쉬울 뿐 유아인 엄홍식 씨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명체다. 먹고 자고 따뜻한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좀 더 아량 있게 서로 관용을 베풀 수는 없을까?
영화 라라랜드 미아를 꿈꾸는 자들을 위한 오디션 장면
https://youtu.be/UFQdoDe1gtE
라라랜드 미아 오디션 Fools Who Dream 씬 듣기































